암호화폐는 탈중앙성과 익명성이라는 특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금융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이러한 기술적 특징이 국제 사회의 제재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란과 북한은 제재로 인해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암호화폐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금 조달과 외화 확보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암호화폐를 통한 제재 회피의 구조와 대표 사례, 그리고 이에 대한 국제 규제 대응 현황을 구체적으로 분석합니다.
암호화폐를 통한 제재 회피
암호화폐는 기존 금융 시스템과 달리 은행이나 국가의 허가 없이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송금할 수 있어, 제재 대상 국가나 단체들이 제재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 매력적인 도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상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는 공개적으로 기록되지만, 개인 지갑의 실소유자를 특정하기 어려워 거래 추적에 한계가 존재합니다. 특히 믹서(Mixer)나 프라이버시 코인(Zcash, Monero 등)을 활용하면 자금의 출처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어, 제재 회피에 이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암호화폐 거래소 및 관련 서비스 업체들이 제재 회피에 연루되었음을 이유로 제재를 부과한 사례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암호화폐의 투명성과 기술적 발전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동시에, 규제적 측면에서의 새로운 도전과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이란과 북한의 전략
이란과 북한은 국제 사회의 제재로 인해 전통적인 금융 경로를 차단당한 상황에서, 암호화폐를 적극 활용하여 자금 확보와 경제 운영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이란의 경우, 자국 내 풍부한 전력을 바탕으로 대규모 암호화폐 채굴 산업을 육성하고 있으며, 채굴한 비트코인을 수출 대금 결제나 수입 비용 지불에 활용하고 있다는 보고가 다수 존재합니다. 정부 차원에서 채굴업체를 합법화하고 중앙은행을 통해 이를 수매함으로써, 제재로 차단된 외화 유입 통로를 대체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은 사이버 공격을 통한 암호화폐 탈취에 집중하고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라자루스 그룹과 같은 국영 해커 조직이 전 세계의 암호화폐 거래소 및 디파이 플랫폼을 공격하여 수천만 달러 이상의 암호화폐를 탈취해 왔으며, 이를 믹서와 여러 지갑을 통해 세탁하여 국가 재정에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해킹을 넘어서 정교한 사회공학적 접근과 멀웨어 배포, 피싱 공격 등 다양한 수법을 구사하고 있어 국제 사회의 심각한 보안 위협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국제 사회의 규제 대응
이러한 제재 회피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 사회는 암호화폐 관련 규제 강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재무부와 법무부를 중심으로 암호화폐 믹서 및 개인 지갑 제공업체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으며, Chainalysis나 TRM Labs와 같은 블록체인 분석 기업들과 협력하여 거래 추적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OFAC는 Tornado Cash와 같은 믹서 서비스에 대해 직접 제재를 부과한 바 있으며, 이를 통해 암호화폐 생태계 내에서도 합법성과 불법성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도 AMLD(자금세탁방지지침)를 강화하여, 암호화폐 거래소와 수탁 업체에 대한 KYC 및 거래 보고 의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FATF(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는 ‘트래블 룰’을 도입하여 암호화폐 송수신 시 거래자 정보를 반드시 확인하고 공유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점차 각국의 입법화가 진행 중입니다. 이런 국제적 대응은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다소 느릴 수 있지만, 점차 규제 체계의 일관성과 집행력이 강화되어 가는 추세입니다.
결론 : 기술과 규제의 균형
암호화폐는 자유롭고 혁신적인 금융 시스템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악의적인 목적에 사용될 가능성도 함께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란과 북한의 사례는 암호화폐가 국제 제재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이자 현실입니다. 따라서 암호화폐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술 혁신과 더불어 투명성 확보, 규제 준수, 글로벌 협력의 균형 있는 발전이 필요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국제 사회의 규제 강화 노력은 단기적으로는 일부 기업과 사용자의 불편을 초래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암호화폐가 제도권 내에서 건전한 금융 수단으로 자리 잡는 데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앞으로도 암호화폐의 확장성과 투명성을 동시에 보장하는 정책적, 기술적 접근이 병행되어야 하며, 이는 국제 사회 전체의 공조 아래에서만 가능할 것입니다.